2016년 2월 13일 토요일

2주차를 마치며

2월 마지막 주 부터는 천안으로 옮겨서 근무를 하게 될 것 같으니 사실상 서울대병원에서의 생활은 다음 주가 마지막이 되는 셈이다. 마지막 주에 당직이 있긴 하지만 어떻게 해결이 되겠지. 정 안될 것 같으면 뭐 당직 서면 그만이다.

1년 동안 정이 꽤 많이 들었다. 가짜선생이지만 그것도 선생이라고 훈장질을 했더니 목과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그런 것이 내가 현재 느끼는 '정'이 아니길 바란다. '정'은 나누는 것이니 나와 함께 했던 전공의, 전문의들도 나와 같은 '정'을 가지기를 바란다.

요즘들어 하루하루가 매우 소중해지니, 생각날 때 마다 기록을 좀 남겨 이 시간들을 기억하고 싶다.

 프로퍼 턴으로 있는 인턴 선생을 보면서 또다른 나를 본다. 아무 생각이 없어 보이지만 본인은 그 사실을 인지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부족해야 시작하는 것인데 왜 부족해보이려 하지 않는가. 마취과 의사로서의 삶을 시작하지도 않았고, 배우기 위한 능력이 부족하지만 그것을 채울 수 있는 것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정성스러운 마음. 뭔가 얘기를 꺼내고 싶었지만 하지 않았다. 자각되지 않은 지적은 그냥 잔소리로 그칠 것이기 때문이다. 공손하지만 받아들이고 싶어하지 않는 태도. 그것이 참 못나보였다. 뭔가 지적을 하면 답을 찾아야 하는 것은 맞지만, 꼭 책에서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라인을 정리하고, 환자를 덮어주고...내가 지식과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환자에게 미안해야 하는 것이고 그런 미안함을 채우기 위해 작은 행동 들을 하게 된다. 책을 보는 것도 그런 행위 중 하나겠지만 어찌 지식을 채우기 위해 내 눈앞에 있는 환자에게 소홀할 수 있겠는가? 뭔가를 알 수 있도록 정리하고, 자기가 이해할 수 있는 틀 안으로 가져오는 것은 부족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 것 조차 일일이 가르쳐야 한다면 어떻게 스스로 커 나갈 수 있겠는가?

선생이 아니니 굳이 선생 역할을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한 명의 전문의로서 전공의를 대할 때는 이 사람이 발전할 수 있도록 일깨워주는 역할을 해야겠다. 그리고 그 역할은 전공의가 눈 앞에 있는 환자에게 '정성을 다하도록' 하는 일부터 시작될 것이다.

2015년 3월 5일 목요일

잊혀진다.

잊혀지는 게 가장 두려운 일인 줄 알았다. 
그래서 잊혀지지 않으려고, 기억에 남으려고 애썼다. 

아...

잊혀지는 게 두려운 게 아니라
잊혀지는 나를 마주하는 게 두려운 것이구나. 

그런데

생각해보면,
나 자신에게조차도 나는 잊혀지고 있다. 

어제는 뭐?
지난 주엔 뭐?
작년엔 뭐?

그렇게 잊혀진다. 
근데 뭐 변하는 거 하나 없이
나는 오늘을 잘 살고 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지금을 보자. 
지금 곁에 있는 사람
지금 하고 있는 일
지금 하는 말
지금 짓는 표정

그리고
지금 행복해지자. 
금새 지나가 잊혀질 기억에 즐겁고 행복한 것이 채워지면 더 좋겠지?

잊혀지는 나를 똑바로 보고
잊혀지는 걸 두려워하기 보다
잊혀지는 시간들을 서로 나누는 것에 집중하라. 

2014년 8월 13일 수요일

세월호는 어디나 있다.

2014년 4월 16일 아침 세월호가 침몰했다.

배 안에 타고 있던 학생, 일반승객 등 476명이 타고 있었다. 이 중 294명은 사망하고 10명은 실종되었다.

구조대책 따위는 없었고 모든 사람이 우왕좌왕하면서 자기 책임을 피하려고 하는 동안,
2014년 4월 대한민국은 300명이 넘는 대한민국 국민이 하릴없이 수장되는 것을 생중계로 지켜보았다.

4개월이 지났다.

모든 과오에 대한 책임을 지고 국민의 심판을 받을 것 같던 청와대와 여당은  두 차례의 선거 중 하나는 선전했고, 다른 하나는 압승을 거뒀다.

이제 '세월호' 대신 '경제'를 이야기한다.
300명이 넘는 국민을 수장시킨 대통령은 언제나 그랬듯이 남 탓하기에 여념이 없다.

세월호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한 국무총리를 대신해서
2명의 이상한 인물들을 연이어 물먹이고
다시 사퇴한 인물을 불러들이면서 '아무도 책임지지 않은' 채 사건을 덮었다.

뉴스가 안되면 그만
조용히 처리되면 그만
이리 저리 돌려서 흐지부지해버리면 그만

세월호 사건의 원인을 규명해달라는 특별법 같은 건 애초에 처리할 생각따윈 없었을 거다.
단지 이리저리 조리돌림하다가 흐지부지해버리면 그만이지.
대책이랍시고 돈 몇 푼.. 바라지도 않는 특혜를 준다고 언론에 알려주면 그만이다.

남의 일이라고?

벌써 내 일이다.

다음 차례는 누군가?

세월호는 폭력과 무책임으로 일관된 사고방식이 어떻게 국민들을 우롱하느냐가 아니라 그래봐야 저들은 아무 변화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계기가 된다.

사다리는 이미 치워졌다.

국민은 국민의 수준에 맞는 리더를 뽑는게 맞나부다.

오바마의 지지율이 떨어졌다고 하더라도 재선에 성공한 이유는 오바마가 연설을 잘해서 그런 건 아닌 듯 싶다.

나라도 아주 조금이나마 위로 올라선 사람이 된다면 기꺼이 등을 내주고 어깨를 빌려주리라. 낮은 곳에서는 서로를 위해야만 살 수 있다.

2014년 8월 11일 월요일

힐링이란?

"heal"은 타동사다.

무엇인가를 낫게 한다는 뜻이지, 스스로 낫는다는 뜻이 아닌 거다.

무엇을 낫게 한다는 뜻인가? 그 대상에 따라서 사람마다 힐링이 되고 또 되지 않는 거겠지?
'힐링캠프'를 보면서 내가 힐링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제서야 깨닫게 된다.

주말에는 '나'를 힐링했다.
나의 '어떤 것'을 힐링했을까? 어떤 것이 아니다. '나'다. '나'를 힐링한다는 것은 약간 아이러니하지만 남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자신'을 힐링한다면 그것은 본인을 완전히 객체화시킬 수 있는 성인의 반열이던지, 완벽한 나르시스트이던지...ㅎㅎㅎ

주말 나들이의 목적은 '빈둥거림'이었다.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냥 무의미하게..멍 때리면서...뭐 특별히 하고 싶은 것도 없고 해야 할 것도 별로 없이 말이야...돈을 내라고 하면 돈을 좀 내고...별로 저항하지 않고 계획하지 않으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불안함에 쫓겨 이리저리 치대는 '나'에 대한 휴식이 아닐까 싶다.

맛있는 거 못 먹어도 그만이고, 좋은 거 못해봐도 된다. 맛집에서 한두시간을 기다리고 먹은 음식은 '맛있다는 음식'이지 '맛있는 음식'은 아닐 거다. 그 가치는 내가 기다린 시간과 상관이 있다. 어느 누가 긴 줄 서서 한참 기다린 음식이 맛없다고 팽개치고 나갈 것인가? 좋은 곳은 어느 해설서에 거창한 미사여구를 달아서 설명한 글을 읽어서 '좋은 곳'으로 분류되는 것이겠지?

나에게 이번 주말은 "좋은 음식은 기분 좋을 때 먹는 음식이고 좋은 곳은 기분 좋을 때 있는 곳"이란 것을 다시 새길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구름이 줄지어 늘어선 사이로 파란 하늘이 비치고
풀과 나무로 덮인 야트막한 능선을 배경으로
평상에 앉아서 동동주 한 잔을 마시니까

왜 행복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 알 것 같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잘 살아야 할까?
잘 살면 행복해질까?

다른 사람의 행복은 다른 사람의 것이고
내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글을 쓰면서도 좀 웃기네.

행복에 대해서 고민을 하다니....

2014년 8월 6일 수요일

폭력의 시대



   가하는 자의 귓속에는 당연한 것이라 속삭이고, 당하는 자에겐 너도 해보라 속삭인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는 것은 분명 또 다른 폭력이지만  마치 정의로운 일인 것처럼 포장되는 일이 허다하다. 무관심의 폭력은  또다른 무관심의 비호를 받으면서 개인주의라는 비슷한 개념에 기생충처럼 붙어 자라난다.  


  나는 누구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누구에게 폭력을 당하고 있는가? 이미 만성이 되어 무감해진 터라 그 방향성을 스스로 깨닫기 어려워진 건 아닐까? 폭력의 다양한 모습은 일견 긍정적인 형태로 나타나기까지 하니 매번 스스로 묻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누구에게 의존하겠다는 생각은 빨리 버리자. 내가 생각하고, 내가 판단해야 한다. 내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야 그것이 남과 어떻게 다른지 판단할 수 있다. 또한 끊임없이 스스로를 의심하고 수정해야 한다. 피곤하고 힘들다면 그것이 당연하다. 중요한 것이 쉽게 주어지지는 않는 것이니까. 


  폭력의 시대에 살고 있다. 내가 폭력과 무관할 수 없기 때문에 항상 자각하고 의심하고 판단하며 살아야 한다. 힘들다고? 그렇게 쌓아온 길을 돌이켜 볼 때, 네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지..네가 어떤 사람인지에 조금이나마 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2014년 7월 10일 목요일

나 자신에게 쓰는 글

작은 성과에 기뻐하지 마라.
지금 이룬 것은 네가 다음으로 나아갈 길에 대한 방향정도 일 뿐이다.

네가 성취해야 할 '분명한 목적'이란 것은 없다.
다만 네가 걸어온 길이 목적이 되어야 한다.
너는 어떤 길을 만들고 있는가?

무엇인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비관하지 마라.
원칙이 무엇이고, 네가 그 원칙을 잘 따르고 있는가에 집중하라.
네가 한 일이 원칙에서 벗어났다면 조금 돌아가더라도 원칙을 지키도록 하라.


연구에 대해서..
논문 한 편 한 편이 소중하다면 그들 서로에게도 소중한 영향을 끼칠 수 있어야 한다.
남의 성과에 관심을 두지말고 그가 어떻게 성과를 이뤘는지를 배워라.

누구에게나 감사하라.

네가 하고 싶지 않은 말은 하지마라.
하고 싶지 않은 말, 생각없이 나오는 말을 내뱉기 보다는 조금 어색하게 있는 게 낫다.

라인을 찾지 마라.
네가 라인이 되어라.
너를 끌어줄 사람을 찾지 말고, 너를 도와줄 사람을 찾아라.

사람은 위아래가 없다.
누구에게나 만나는 순간만큼은 진실되게 대하라.
이름이나 얼굴을 외우지 못할 것 같은 사람은 꼭 미리 양해를 구하라.

일은 미루지 말고
사과는 빠르게 하라.

잠은 충분히 자고, 가끔은 멍때리고 있기도 해야 한다.

제발 이 글을 한번씩 보고 수정해라.
네가 하는 생각, 쓰는 글은 모두 바뀔 수 있다.

2014년 3월 30일 일요일

의사들이 왜 분개하는가?

의사들이 왜 분개하는가?
무시당하니까 분개한다.

학교 다니는 동안 상위권을 놓쳐본 일이 없고,
각종 사교육비에 높은 대학등록금 (그것도 6년이나..--;;) 꼬박꼬박 내고..
절대 다수가 인턴에 전공의까지 박봉에 고된 일을 견뎌왔는데...

선생님..선생님...하면서 굽실거리는 것 처럼 보여서 우쭐하기도 했는데
막상 문제가 발생하면 멱살잡히고 뒤통수맞고...
그러면서 '너네는 잘났잖아..잘난 놈이 왜 그래... 뭐가 부족해서...' 따위의 핀잔이나 듣고...

억울한 일 당해본 적이 별로 없어서 제대로 화 낼 줄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너네들이 뭐가 억울하냐...'
'그래도 잘 먹고 잘 살잖아..'
'생명을 다루는 사람들이 자기 희생도 못하냐..'

공무원들은 국가에 소속되어 국가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인데..
국가는 국민이라는데...
의사는 국민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무시당하니까 분개하는 거다.

'ECMO를 달았는데 환자가 죽으면 돈 못줍니다.'
'금방 죽을 것 같은 환자에게 어쩔 수 없이 시행하는 게 ECMO인데, 이 사람이 죽을 지 말지 어떻게 압니까?'
'그건 저한테 물어보실 일이 아닙니다...의사선생님이 판단하셔야죠.'

이런 대화가 오고가니까 분개하는 거다.

환자보면 대부분의 치료비를 국가가 주는데, 납득할 만한 이유없이 돈을 적게 준다.
문제제기를 해도 배째라고 나자빠진단다.

그러면서 모자라는 돈은 100/100으로 메꾸란다. 100/100이 뭐냐? 받을 만하다고 국가가 인정해줄테니 알아서 받으라는 거다. 이걸로 수익을 남기지 못하면...공단에서 주는 급여보다 단가를 떨어뜨리기 위해서 굉장히 저급한 치료를 대단히 많은 환자에게 시행할 수 밖에 없다. (박리다매가 답이었던 거지.)

의대가고 싶은 사람들이 대부분
환자에게 존경받고 돈도 많이 버는 의사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어하지
환자에게 욕먹고 의료행위보다 돈도 적게 받는 의사가 되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제도를 애초에 그렇게 부당하게 만들 때 뭐했나 싶지?
그 인정비급여에서 돈 많이 남겨먹고, 의료행위에 따른 세금을 적게 내고 싶어서 수가를 작게 매겼다는데...많이 잘못된 것이 분명하다.

그래...잘못된 것이 있어서 바로 잡자고 하는데..
돈 많이 못 벌어도 좋으니 제대로된 의료행위를 하고 싶어 한다는데..

"쟤네들 돈 많이 벌고 대접 잘해주는데 자꾸 더 벌고 싶어하는 욕심쟁이...."라고
뒤집어씌우려고 하니까 억울하고 화나는 거다.

사람들 바보 취급하지 마라.

적어도 대다수의 의사들은....
의사 욕하는 사람들보다 세금도 많이 내고, 일하는 시간은 훨씬 길다. 그리고 실수나 오류로 인한 부담은 훨씬 더 크다. 마음 아픈 일도 훨씬 많다.

뭐니뭐니해도 의사는 공명심 때문에 하는 거다.
결정에 따른 책임감이 그만큼 크기 때문에 대접받고 싶어하는 거다.

떼돈 벌게 해달라고 하는 거 아니니까 무시하지나 마라.
돈 잘 버는 엘리트집단이 집단 이기주의적 발상에 사로잡혀 있다고 욕하다가 주변에 누가 아프면 잘 봐달라고 부탁하지나 마라.

사람 무시하고 잘 되는 꼴 못봤다.
의사들 중에 똑똑한 사람들 참 많다. 공부만 잘해서 다른 건 잘 못할 거 같지?
처음이라 익숙하지는 않아도, 중요한 게 뭔지, 어떻게 하면 잘하는 지를 잘 아는 사람들이다.

기다려봐..보여줄께....